한국시사경제 안창현 기자 |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문화 강국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로 OECD 평균보다 2.4년 길고, 예방 가능한 사망률과 치료 가능한 사망률도 OECD 평균보다 낮다.
의료기술과 생활환경의 발전으로 국민은 과거보다 오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삶의 길이는 늘어났지만,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할 이유를 잃는 국민은 여전히 많다.
OECD가 2025년에 발표한 국가별 보건지표에서 한국의 연령표준화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3명으로, OECD 평균 11명의 두 배를 넘었다. 오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살아갈 희망을 지켜주는 나라가 되지는 못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약 72만7,000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는다. 자살은 15∼29세의 세 번째 사망원인이며, 한 사람이 사망할 때마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자살을 시도한다.
WHO는 자살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순간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생물학적·심리적·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규정한다. 또한 적절한 시기에 근거 기반의 개입이 이뤄지면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자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개인의 우울증이나 가정불화, 경제적 실패를 원인으로 지목한 뒤 곧 잊어버린다. 물론 정신질환, 질병, 가족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은 중요한 위험요인이다.
그러나 왜 이토록 많은 국민이 비슷한 절망에 반복적으로 빠지는지 묻지 않는다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자살은 개인에게서 발생하지만, 그 배경에는 사람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탈락시키며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구조가 놓여 있다.
외환위기와 함께 치솟은 자살률
한국의 자살률 변화는 경제·사회적 충격과 밀접하게 맞물려 왔다. 통계청이 분석한 1983∼2022년 추이를 보면 자살률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높아졌고, 2003년 카드대란과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상승했다. 2011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31.7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해 자살예방법이 제정되고 국가 차원의 예방정책이 강화되면서 일정 기간 감소했지만, 2018년부터 다시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 같은 흐름은 자살을 오직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기침체와 실업, 가계부채, 사업 실패, 소득 감소처럼 삶의 기반을 흔드는 사회경제적 충격이 커질 때 자살률도 함께 움직였다. 직장을 잃거나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기보다 빚과 신용불량, 가족 해체와 사회적 고립에 먼저 직면한다면 실패는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삶 전체의 붕괴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경찰청 변사자 통계를 토대로 한 통계청 분석에서 2021년 자살 동기는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39.8%로 가장 많았고, 경제생활 문제가 24.2%, 육체적 질병 문제가 17.7%, 가정 문제가 6.7%로 나타났다. 직장이나 업무상의 문제도 3.8%를 차지했다. 정신건강과 경제생활, 질병, 가족관계가 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얽혀 한 사람을 절벽 끝으로 몰아간다는 의미다.
입시 경쟁,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생존훈련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경쟁은 성인이 된 뒤 시작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고 또래와 어울려야 할 때부터 더 좋은 유치원과 학원, 영재교육과 사교육 경쟁에 들어간다. 초등학생은 특목고와 자사고를 준비하고, 중·고등학생은 명문대 입학을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와 학원을 오간다.
교육은 각자의 재능을 발견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오랫동안 학생을 시험점수와 등급으로 구분해 왔다. 단 몇 점의 차이로 대학과 전공, 취업 기회가 갈리고, 대학의 이름이 개인의 능력과 인격까지 대신 평가한다. 학생은 친구와 함께 배우기보다 친구를 이겨야 하고, 모르는 것을 질문하기보다 틀리지 않는 훈련을 반복한다.
그 결과 청소년은 인생에서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시험 실패를 존재 전체의 실패로 받아들인다. 통계청의 2022년 사망원인 분석에서 자살이 전체 사망원인 가운데 차지한 비중은 10대 42.3%, 20대 50.6%, 30대 37.9%였다. 자살은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였다. 청소년과 청년이 암이나 심혈관질환보다 스스로 생을 포기해 더 많이 숨진다는 사실은 교육과 고용, 주거, 인간관계로 이어지는 청년의 삶 전체가 위험하다는 경고다.
성적을 올리는 방법은 가르치면서 실패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가르치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는 기술은 요구하면서 마음이 아플 때 도움을 청하는 방법은 충분히 알려주지 않았다. 경쟁교육이 모든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성적과 순위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문화가 자존감을 약화하고 실패에 대한 공포를 키운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황금만능주의와 끝없는 비교
학교를 졸업해도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취업과 연봉, 아파트와 자동차, 승진과 자녀교육으로 경쟁의 종목만 달라진다. 사람의 됨됨이보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얼마를 버는지를 먼저 묻는다. 돈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성공과 행복, 심지어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황금만능주의는 모두를 불안하게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보다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좋은 집과 고급 자동차, 해외여행과 명품 소비처럼 가장 화려한 순간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편집된 성공과 자신의 편집되지 않은 일상을 비교한다. 비교는 상대적 박탈감을 낳고, 박탈감은 자신이 뒤처졌다는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경제적 격차가 단순한 소득의 차이를 넘어 존중받을 자격의 차이처럼 받아들여지는 순간, 가난과 실직은 생계의 위기인 동시에 정체성의 위기가 된다. “돈이 없어서 힘들다”는 고통보다 “돈이 없으므로 나는 실패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더 깊은 절망을 만든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
경쟁이 치열하더라도 실패한 사람이 다시 도전할 수 있다면 사회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한 번의 실패가 너무 오래 따라다닌다는 데 있다. 입시에 실패하면 학벌의 격차가 남고, 취업에 실패하면 경력 공백이 약점이 된다. 사업에 실패하면 과도한 채무와 신용 하락이 재기를 막고, 중장년층이 직장을 잃으면 이전의 경력과 소득을 회복하기 어렵다.
통계청 자료에서 2021년 직업별 자살자의 60%는 학생·가사·무직 집단에 속했다. 이 수치만으로 직업 유무와 자살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역할과 안정적인 소득, 인간관계의 연결망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업의 채용은 나이와 경력의 연속성을 따지고, 금융제도는 과거의 실패를 오랫동안 기록한다. 복지제도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자신의 가난과 무능을 반복해서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승자는 성공을 자신의 능력으로 여기지만, 패자의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진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이 재기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승자도 안심할 수 없다. 지금의 직장과 소득,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자신도 추락할 수 있다는 공포가 모든 사람을 더 극단적인 경쟁으로 몰아넣는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는 패자만 잔인하게 대하는 사회가 아니라 모든 국민을 잠재적 패자로 만드는 사회다.
노인에게 더욱 가혹한 빈곤과 고립
자살의 위험은 청년층에만 집중되지 않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80세 이상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60.6명으로 다른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았다. 노인 자살률이 과거보다 감소하고 있다고 해도 절대적인 수준은 여전히 심각하다.
노년층은 소득 감소와 만성질환, 배우자와 친구의 죽음, 사회적 역할 상실을 동시에 겪는다. 한국은 가족이 노인을 돌봐야 한다는 전통적 인식과 실제 가족의 부양능력이 약화된 현실 사이에 놓여 있다. 국가는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가족은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노인은 자신을 사회와 가족의 부담으로 여기기 쉽다.
수명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노후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소득과 주거, 의료와 돌봄, 인간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고독의 연장이 될 수 있다. 노인 자살 문제는 개인의 질병이나 외로움이 아니라 빈곤과 돌봄의 공백, 지역공동체의 해체가 함께 만든 사회문제다.
건강 수준은 높지만 마음은 병든 나라
한국은 병상과 의료장비를 충분히 보유한 나라다. OECD 자료에서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2.6개로 OECD 평균 4.2개의 세 배였고, 인구 100만 명당 CT·MRI·PET 장비도 87대로 OECD 평균 51대보다 많았다. 반면 스스로 건강이 나쁘거나 매우 나쁘다고 평가한 국민은 11.3%로 OECD 평균 8.0%보다 높았다. 성인의 61%는 충분한 신체활동을 하지 않아 OECD 평균 30%의 두 배를 넘었다.
몸의 이상을 발견하는 장비는 넘치지만 마음의 위험신호를 발견하고 연결하는 체계는 충분하지 않다. 병원에 갈 수 있어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대한 편견과 기록에 대한 불안, 비용과 시간의 부담 때문에 치료를 미루는 사람이 많다. 우울과 불안이 악화된 뒤에야 위기개입이 시작되고, 상담을 받더라도 경제·고용·주거·돌봄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다시 절망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정부는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통해 2021년 인구 10만 명당 26.0명이던 자살률을 2027년 18.2명으로 30%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신건강검진 주기를 10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고, 지역별 생명존중안심마을을 조성하며, 고위험군을 조기에 찾아 전문기관과 연결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보건복지부 대표홈페이지][3])
그러나 자살률을 낮추는 일은 상담전화와 정신건강검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상담을 받은 청년이 다시 과도한 입시와 취업 경쟁으로 돌아가고, 치료받은 실직자가 생계대책 없이 빚더미에 남으며, 외로운 노인이 다시 빈집으로 돌아간다면 위험의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자살한 개인이 아니라 자살을 낳는 구조를 보라
자살에는 하나의 원인이 없다. 정신질환, 경제적 빈곤, 질병, 관계의 단절, 직장 문제와 사회적 고립이 서로 영향을 주며 위험을 키운다. 따라서 특정 사건이나 단일한 통계만으로 한 사람의 죽음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패턴은 분명하다.
우리는 어린아이에게 친구보다 앞서라고 가르치고, 청년에게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뒤처진다고 말하며, 중년에게 직업과 소득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노인에게는 가족에게 짐이 되지 말라고 암묵적으로 압박한다. 승자는 모든 것을 차지하고 패자는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는 정글의 법칙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자살을 개인의 선택이라고만 부르는 순간 사회는 책임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한 국가에서 비슷한 고통이 세대를 넘어 반복되고, 경제위기 때마다 자살률이 오르며, 청소년과 청년의 가장 큰 사망원인이 자살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구조의 실패다.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의 속도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제는 그 성장 과정에서 뒤처지고 쓰러진 사람을 어떻게 다시 일으킬 것인지 답해야 한다. 경쟁보다 협력을 가르치는 교육, 실패 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고용·금융제도, 빈곤과 고립으로부터 노인을 지키는 안전망, 누구나 편견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정신건강 서비스가 필요하다.
진정한 선진국은 성공한 사람의 숫자가 많은 나라가 아니다. 실패한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아픈 사람이 부끄러움 없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나라, 가난하거나 늙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존재를 짐으로 여기지 않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다.
자살로 내모는 사회를 바꾸지 않는다면 상담전화의 숫자를 외우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 사람은 왜 죽었는가”가 아니라 “우리 사회는 왜 그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붙잡지 못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 질문에서부터 대한민국의 자살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시작될 것이다.














































